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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미나에서 썩은내가 난다”…헤지펀드 거물 칼 아이칸, 전쟁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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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억만장자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기업 사냥꾼’인 칼 아이칸(86)이 글로벌 유전자 및 유전체 분석 솔루션 제공업체인 일루미나(illumina) 지분을 사들였다고 13일(현지시각) 밝히며 주주들을 대신해 이 회사 경영진과 전쟁을 선포했다. 아이칸의 지분 투자 소식에 최근 2년 동안 40% 넘게 떨어졌던 이 회사 주가는 이날 하루에만 17% 급등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 STA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아이칸은 일루미나 주주들에게 지난 2016년 일루미나에서 분사한 혈액 암 검진 스타트업 그레일(Grail)을 지난 2021년 80억 달러(약 10조원)을 주고 되사기로 한 일루미나 경영진의 결정을 “무모하다”고 평가하며 경영진과 대리전을 선포했다.

아이칸은 올해 상반기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일루미나 이사회에서 3명의 이사를 지명할 계획을 밝혔고, 일루미나 이사회가 그레일 인수를 결정하면서 주주들에게 500억 달러(약 65조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아이칸의 주장대로 일루미나 시가 총액은 현재 300억 달러 수준으로, 그레일 인수를 발표한 지난 2021년 8월(750억 달러)에서 반토막났다. 아이칸은 주주서한에서 “이렇게 주가가 파탄난 것은 일루미나 이사회의 잘못된(솔직히 이해가 안되는) 결정의 결과다”라며 “일루미나 안에서 뭔가 썩어가고 있다”라고 썼다.

아이칸은 일루미나가 만약 오너가 있는 기업이었다면 최고경영자(CEO)는 당장 해고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루미나 경영진은 무책임이라는 단어에 새로운 뜻을 부여했다”라고도 말했다. 미국 증권거래소 신고서에 따르면 아이칸은 지난 주 종가 기준 4억2700만 달러(약 5600억원) 상당의 지분(1.4%)을 갖고 있다.

아이칸이 일루미나 경영진과 대리전에 나선 것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레일은 암을 조기 발견하는 혈액 검사법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지난 2016년 일루미나에서 분사했다. 빌 게이츠와 제프 베조스를 포함해 유명인들이 이 회사에 20억 달러(약 2조 6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난 2020년 9월 일루미나는 그레일을 80억 달러(약 10조 5000억원) 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20억 달러를 투자받아 분사한 회사를 4배를 주고 되사들이는 것을 두고 미국 유럽 규제 당국은 의문을 제기했다.

유럽 규제 당국이 합병을 반대했지만, 일루미나는 그레일이 유럽 사업을 하지 않으니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작년 8월 합병 종료를 선언했다. 아이칸의 주장은 전세계 바이오 벤처 붐이 일던 2020년 일루미나가 그레일을 비싼 값에 사들이면서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했다는 것이 골자다.

지난 2021년까지 일루미나 회장을 지낸 제이 플래틀리(Jay Flatley)도 지난 1월 파이낸셜타임즈와 인터뷰에서 “엄청나게 실망적인 거래”라고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EU는 일루미나에 그레일 재매각을 명령했고, 규제 당국 없이 합병 거래를 종결한 것을 두고 연 매출의10%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아이칸은 이를 두고 일루미나의 경영진과 이사회가 뻔뻔하게 규제 기관의 코를 찌르는 결정을 했고, 이는 “설명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엄청난 리스크를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EU의 요구에 따라 그레일을 매각하게 되면, 4억 5800만 달러 벌금에 최대 17억 5000달러 세금까지 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일루미나는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아이칸이 회사를 부당하게 통제하려고 하고 있으며, 아이칸이 이사회 지명을 요구한 인사들은 하나같이 기술과 경험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일루미나는 성명에서 “칼 아이칸은 그레일이 일루미나 주주들에게 제공할 실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규제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라며 “EU가 매각 명령에 항소했고, 패소하면 그레일을 매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식시장과 언론은 아이칸의 편에 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일루미나 주식은 전거래일 대비 17% 상승한 226.94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글로벌 의학 제약 바이오 전문 매체인 STAT은 이날 주가 추이를 언급하며 “칼 아이칸은 기업 사냥을 할 때, 원하는 건 대부분 얻어 낸다”라며 “아이칸이 뭐라고 하든 일루미나 경영진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STAT의 주장대로 아이칸은 바이오 기업 투자에서도 발군의 역량을 보이고 있다. 칼 아이칸은 2009년 희귀 질환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기업인 겐자임(Genzyme)에 투자하고, 이사회 이사 추가를 압박했다. 지난 2011년에는 사노피 아벤티스(Sanofi-Aventis)가 겐자임을 200억 달러(약 26조 2400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아이칸은 수천억원을 벌었다.

한편 일루미나는 제이 플래틀리 회장이 지난 2006년 DNA 시퀀싱 기술을 6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시작했다. 이후 세계 최대 유전체 분석 기업으로 성장했고, 지난 2012년 세계 1위 진단업체인 로슈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