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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

청색 LED 만든 나카무라 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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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일본 전자 업체 교세라 신입 사원 공채 면접장.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한 지원자에게 물었다. “만약 입사한다면 뭘 하고 싶습니까?” 취업이 절실하던 도쿠시마대 전자공학부 출신 청년은 “영업이든, 경리 일이든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오”라고 답했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청년이 입사한 곳은 도쿠시마현 아난시라는 소도시의 직원 200명 규모 중소기업 니치아화학공업(니치아화학)이었다. 아내, 아들과 함께 고향 근처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선택은 15년 뒤 인류의 밤을 바꿨다. 창고나 다름없던 니치아화학 연구소에서 홀로 기기를 용접하던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1954~)는 청색 LED(발광 다이오드)를 만들어 에디슨이 1880년 개발한 백열전구의 시대를 끝냈다. TV와 스마트폰·노트북 같은 디지털 기기의 혁신도 이끌었다. 회사 기여가 없어 진급도 하지 못하던 샐러리맨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자신을 괴롭힌 회사를 상대로 역사상 가장 화제가 된 특허 소송을 제기해 승리했다.

◇반석차 20등의 열등생

나카무라는 일본 에히메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장 좋아한 것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철완 아톰’이었다. 아톰이 아니라 아톰을 만든 오차노 미즈 박사 때문이었다. 수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 성적은 형편없었다. 역사와 지리 같은 암기 과목은 왜 연도를 외워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선생님에게 물어도 ‘시험에 나오니까’라는 답밖에 듣지 못했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구부에 열정을 바쳤다. 운동에 집중하다 보니 고교 졸업 때 반에서 20등 정도였고 성적에 맞춰 고향 도쿠시마대에 진학했다. 나카무라는 자서전 ‘끝까지 해내는 힘’에 “물리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취업도 못 할 것이라는 담임 선생님 말 때문에 공학부를 선택했다”면서 “전자공학이 그나마 물리와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다”고 적었다. 니치아화학에 입사한 것은 오가와 노부오 사장과 친구인 지도 교수의 추천 덕분이었다. 사장은 탐탁지 않아 했지만 지도 교수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니치아화학은 형광등 안에 넣는 형광체 생산이 주력이었고 나카무라의 전공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나카무라가 배속된 개발과에는 직원이 네 명이었는데 다른 사람은 모두 화학과 출신이었다.

 

 

◇”분노가 나의 힘”

나카무라는 10년간 화합물 반도체의 원료인 인화갈륨 결정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다른 직원들이 형광체 개발에 몰두했기 때문에 스테인리스 용접, 석영과 카본 절단, 전기 배선 등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모든 일을 혼자 했다. 전기로(電氣爐) 같은 복잡한 장비도 직접 만들었다. 나카무라는 “결과는 냈지만 내가 만든 제품은 팔리지 않았다”면서 “제품 질이 떨어지거나 성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니치아화학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카무라는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고, 사장을 찾아가 “청색 LED를 개발할 테니 예산을 달라”고 요청했다. 오가와 사장은 3억엔(약 27억원)과 미 플로리다대 1년 연수를 지원했다. 나카무라는 “청색 LED는 20세기에는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론이었다”면서 “대기업이었다면 기획 단계에서 무산됐겠지만, 사장은 내가 회사에서 유일하게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는 것을 높게 샀다”고 했다. 연수 생활은 비참했다. 나카무라가 석사에 논문도 쓴 적이 없다는 것이 알려지자 모두 따돌렸다. 나카무라는 이때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는다. “분노했고, 논문을 쓰고 청색 LED도 개발하겠다고 다짐했다”면서 “분노가 나의 힘이었다”고 했다.

◇나카무라 매직은 장인의 매직

왜 청색 LED였을까. 필라멘트에 전류를 흘려 나오는 열로 빛을 내는 백열등과 달리 LED는 전기가 곧바로 빛이 된다. 전력 효율이 훨씬 높고, 수명도 월등히 길다. 1962년 적색 LED를 시작으로 주황색, 황색, 녹색은 이미 제품화됐다. 하지만 청색 LED가 없으면 조명으로 쓸 수가 없다. 빛의 삼원색인 적색, 녹색, 청색이 모여야 흰색 빛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색에 비해 파장이 짧은 청색은 높은 에너지 준위가 필요해 만들기 어려웠다. 나카무라는 당시 청색 LED를 연구하던 대기업이나 대학 연구실과 다른 소재를 선택했다. 모두가 셀레늄화 아연을 핵심 소재로 꼽았지만, 나카무라는 가능성이 제로(0)에 가까운 질화갈륨에 집착했다. 그는 “뒤늦게 뛰어든 만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했다. 나카무라는 4년 만인 1993년 상업용 청색 LED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장인(匠人)의 감’이 그가 꼽은 비결이었다. 반도체 개발에 필수적인 양자역학은 공부하지도 않았고, 실패한 방법은 필요가 없다며 논문도 참조하지 않았다. 의논할 동료조차 없었지만, 나카무라에게는 혼자 반도체 소재를 만들며 익힌 경험이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기기를 직접 개조하면서 해결책을 찾았다. 4년간 실험 횟수가 500번이 넘었다. “위대한 발명은 손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나카무라는 “사람들이 청색 LED를 ‘나카무라 매직(마술)’이라고 하지만, 굳이 매직이라면 그건 장인이라는 이름의 매직”이라며 “내가 필요한 것은 이론과 법칙이 아니라 제품이었다”고 했다.

 

나카무라는 이후 자색 LED와 청색 레이저까지 개발하면서 전 세계 LED·레이저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니치아화학 매출은 1993년 200억엔에서 2001년 800억엔으로 급증했고, 직원도 1300명으로 늘었다. 니치아화학이 투자한 것은 나카무라가 쓴 연구비 3억엔이 전부였는데, 나카무라에게 지급된 것은 보상금 20만원뿐이었다. 회사는 나카무라가 청색 LED 논문을 써서 도쿠시마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도 탐탁지 않아 했다. 회사 기밀을 공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가와 사장의 뒤를 이은 사위이자 니치아화학 대표 오가와 에이지는 나카무라를 관리직으로 발령 내고 외부 강연이나 하라고 했다. 이 사실이 해외에 알려지자 학계에서는 나카무라를 ‘슬레이브(노예) 나카무라’라고 불렀다. 결국 나카무라는 “일본을 사랑하지만, 일본 시스템에 환멸을 느낀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나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대 교수로 부임했다.

니치아화학은 퇴사 당시 보안 각서 서명을 거부하고 떠난 나카무라를 영업 비밀 누설 혐의로 고발했고 연구실과 학교, 집에 조사관이 들이닥쳤다. 참다못한 나카무라는 일본 법원에 자신의 특허권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질화갈륨 청색 LED 특허의 마지막 세 자리를 딴 이른바 ‘404 특허’ 사건이다. 2004년 1월 도쿄 지방재판소는 니치아화학이 나카무라에게 200억엔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나카무라의 공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이다. 돈과 아무 인연이 없던 ‘슬레이브 나카무라’가 1800억원의 사나이가 된 순간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화해 권고를 내렸고, 2005년 회사가 나카무라에 8억엔을 지급하는 것으로 소송이 마무리됐다. 나카무라는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사법은 부패했고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좀 더 일찍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2014년 노벨위원회는 나카무라를 아카사키 이사무 메이조대 교수, 아마노 히로시 나고야대 교수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사제지간인 아카사키와 아마노 교수는 질화갈륨이 청색 LED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규명했고, 나카무라는 이를 상용화한 공로였다. 노벨위원회는 “저전력의 태양광 발전으로 작동할 수 있는 LED는 전기 공급이 되지 않는 지역에 사는 15억 명의 삶의 질을 높였다”고 했다. 나카무라는 상금 절반을 모교인 도쿠시마대에 기부했다. 나카무라는 2005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2008년 동료 교수들과 함께 조명 업체 소라(Soraa)를 세워 억만장자가 됐다. 카네기재단은 2018년 나카무라를 ‘위대한 미국 이민자 38인’의 한 명으로 선정했다.

나카무라는 지난해 자신이 개발한 레이저 기술을 기반으로 핵융합 스타트업인 블루레이저 퓨전을 공동 창업해 7개월 만에 25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창업에 뛰어든 이유를 묻자 “어떤 성과를 내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샐러리맨에 미련을 가졌던 내가 얼마나 멍청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대중 강연에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좀 더 일찍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시작하라. 집념이 있는 한 미래는 있다.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반도체인 LED를 흰색 조명으로 쓰려면 적색·녹색·청색 세 가지 LED가 필요하다. 하지만 파장이 짧은 청색을 내는 소재는 기판에 증착하면 곧바로 날아가 박막을 만들 수 없었다. 나카무라 슈지는 위에서 또 다른 가스를 뿌려 질화갈륨을 강제 증착시키는 방법을 찾아내 청색 LED를 상용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