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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질환자 10%는 맞춤형 치료 가능” 韓美 연구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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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섯 살인 이펙 쿠주(Ipek Kuzu)는 뇌세포가 줄어드는 희소질환에 걸렸다. 한미(韓美) 연구진이 이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계속 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펙처럼 현재 뾰족한 치료법이 없는 희소질환 환자도 10%는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김진국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와 티모시 유(Timothy Yu)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 공동 연구진은 1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합성 유전물질로 치료할 수 있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희소질환 환자가 전체의 10%에 이르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희소질환 환자의 유전자를 모두 해독했더니 개인별 맞춤 치료제를 쓸 수 있는 돌연변이가 그만한 비율로 나온 것이다. 세포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와 조기 검사만 하면 많은 환자가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희소질환(rare disease, 공식명 희귀질환)은 환자수가 매우 적은 질환을 일컫는 말이다. 7000여 희소질환 중 현재 치료가 가능한 것은 전체의 5%에 그친다. 한미(韓美) 연구진은 희소질환의 하나인 ‘모세혈관 확장성 운동실조 증후군(A-T)’ 환자 235명의 유전정보를 모두 해독했다. 이펙도 그중 한 명이다. 이 병에 걸리면 뇌세포가 줄고 감염과 암 발병 위험이 커진다.

그전까지는 의미 있는 유전자 부위만 해독했다면, 이번에는 다른 부위까지 모두 해독했다. 유전자 해독 결과, 9~15%가 이른바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ntisense oligonucleotide, 이하 안티센스)’’라는 합성 유전물질로 치료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환자에서 채취한 세포에 안티센스 치료제를 투여해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 환자 세포가 없으면 일반 세포에 환자와 같은 변이를 유도하고 시험했다. 역시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세포 실험 수준에서 치료 가능성이 입증된 것이다.

맞춤형 치료제는 유전자 발현 과정에 작용한다. 생명의 설계도는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에 담겨있다. 생명체는 그중 일부를 전령리보핵산(mRNA)으로 복사해 원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DNA가 생명체라는 건물의 전체 설계도라면 mRNA는 그때그때 계단이나 벽을 만드는 세부 설계도인 셈이다.

희소질환은 mRNA가 생기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로 생긴다. mRNA는 단백질 합성 정보가 담긴 유전자들만 골라 이어 붙인 형태인데, 종종 다른 부분이 끼어든다. 이른바 ‘이어 붙이기 변이(mis-splicing variant)’이다. 이런 변이는 해당 mRNA에 마치 지퍼처럼 상보적으로 결합하는 합성 RNA 조각인 안타센스로 작동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환자마다 이어 붙이기 변이 형태가 달라 치료제는 완전히 맞춤형으로 만든다.

 

김 교수는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던 2019년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밀라(Mila)라는 6세 소녀를 위한 맞춤형 안티센스 치료제 ‘밀라센(milasen)’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밀라는 유전자 해독 결과 이번 환자들처럼 mRNA 합성 과정에서 이어 붙이기 변이가 생겨 희소 신경질환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밀라는 2018년 밀라센을 투여받고 발작 횟수가 줄고 근력도 회복되는 등 병세가 호전됐지만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여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2021년 세상을 떠났다. 밀라는 처음 약물을 투여할 때 이미 앞을 보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밀라센은 밀라의 생명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희소질환 환자에 대한 맞춤형 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교수는 “밀라와 같은 유전자 변이를 일찍 찾으면 치료도 그만큼 빠를 수 있다는 생각에 KAIST 부임 후에도 계속 후속 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미 연구진은 A-T 아동 프로젝트 재단의 지원을 받아 환자들의 전체 유전정보를 무상으로 해독했다. 그중 치료 가능성이 가장 큰 환자인 이펙 쿠주를 위한 맞춤형 안티센스 치료제인 ‘아티펙센(atipeksen)’도 개발해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아티펙센은 A-T와 이펙을 합친 말이다. 김 교수는 “유전자 변이는 외부에서 정상 유전자를 넣어 대체하거나 안에서 교정하는 방식도 있지만, 안전성과 효율이 떨어지고 비용도 수십억원이 든다”며 “맞춤형 안티센스 치료제는 안전성이 입증됐고 개발 기간도 짧다”고 말했다.

문제는 희소질환 환자가 맞춤형 치료제의 혜택을 볼 수 있는지 알려면 유전정보 전체를 해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 해독은 일부 유전자만 해독하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유전정보 전체 해독은 증상이 나온 환자를 대상으로 해서 변이를 확인해도 이미 맞춤형 치료 시기를 놓쳤을 가능성이 크다”며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유전정보 해독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가이드 라인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