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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 괴롭히는 ‘입덧’ 원인 찾았다 항체 물질 임상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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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은 임신 초기 여성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대표적 증상 가운데 하나다. 헛구역질이나 메스꺼움, 구토, 식욕부진 증세로 나타나는 입덧은 보통 임신 9주 이내에 시작해 임신 12주 무렵 정점을 찍고 16주 정도가 되면 저절로 사라진다.

임신부 3명 중 2명꼴로 입덧을 하기 때문에 병이라기보다는 임신 초기에 나타나는 생리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심한 사람은 악성구토로 인해 정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어려운 임신오조증(HG=Hyperemesis Gravidarum)을 호소한다. 임신부 50명 중 약 1명꼴로 임신오조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가 중심이 된 국제연구진이 GDF15라는 호르몬에 대한 민감도가 임신오조증을 포함한 입덧의 핵심 원인으로 드러났다고 사전출판논문 공유집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발표했다. GDF15는 염증에 관여하는 단백질로 일종의 사이토카인(면역반응 조절 단백질)이다. 평소엔 혈중 수치가 미미하지만 질병과 같은 스트레스 요인이 생기면 수치가 높아진다.

GDF15는 1997년 처음 발견됐지만, 2017년 메스꺼움과 구토를 유발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입덧의 원인 물질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케임브리지대 스티븐 오라일리 교수는 그해 국제학술지 <셀 메타볼리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GDF15가 태아 보호를 위해 독성 물질에 대한 반응으로 입덧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실제로 입덧이 심한 임신부들한테서 이 호르몬의 수치가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2018년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말레나 페조 교수가 1만8천명의 임신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임신오조증 위험이 GDF15 유전자의 특정 변이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공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GDF15의 역할을 좀 더 정확하게 밝혀낸 이번 연구는 두 교수가 포함된 국제연구진의 결과물이다. 연구진은 임신 전에 이 호르몬 수치가 어느 정도였느냐에 따라 이 호르몬에 대한 민감도, 즉 임신부의 입덧 정도가 달라진다고 밝혔다.

 

입덧 예방·치료제 개발로 이어질까

연구진은 우선 입덧을 하지 않는 임신부와 입덧이 심한 임신부 60명씩을 비교한 결과, 후자의 GDF15 수치가 훨씬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증가된 GDF15 수치의 대부분은 태반에서 생성된다는 걸 알아냈다.

연구진은 특히 임신 전과 후의 GDF15 수치 변화 폭에 주목했다. 임신오조증 위험이 높은 사람들은 임신 전 GDF15 수치가 매우 낮았다. 연구진은 2018년 페조 교수팀의 연구의 데이터를 다시 살펴본 결과, 임신 전 GDF15 수치가 높을수록 임신오조증 위험이 낮다는 걸 발견했다.

연구진은 임신 전 GDF15 수치가 높은 여성은 이 호르몬의 변화에 둔감해져 임신 중에 이 수치가 높아져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둔감화(탈감작, desensitisation) 효과는 임신 초기 이후에 입덧이 사라지는 이유도 설명해준다. 또 임신 전 흡연 여성이 임신오조증 위험이 낮은 이유도 설명해준다. 흡연은 혈중 GDF15 수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연구진은 생쥐 실험을 통해 GDF15 호르몬의 둔감화 효과를 확인했다. 연구진은 처음엔 생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GDF15와 위약을 투여하고, 3일 후엔 모든 생쥐에게 똑같이 더 많은 양의 GDF15를 투여했다. 그 결과 처음에 위약을 투여받은 생쥐들은 먹는 양이 줄어든 반면 처음에도 GDF15를 투여받은 생쥐들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GDF15 수치를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베타지중해빈혈 환자들한테서도 둔감화 효과가 확인됐다. 연구진이 출산 경험이 있는 베타지중해빈혈 환자 20명에게 물어본 결과,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입덧을 하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임신 전에 GDF15 수치를 높여주거나, 임신 중 GDF15 수치를 낮춰주면 입덧에 따른 위험이 줄어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1950년대에 입덧 치료제로 시판됐던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신부들이 기형아를 출산했던 경험이 있어, 입덧 예방 또는 치료제는 안전성 문제를 넘는 것이 관건이다.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화이자를 비롯한 4개사 이상이 구토나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유발하는 다른 질환을 치료할 목적으로 GDF15 항체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화이자의 약물은 이미 임상시험에 들어갔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 항체가 태아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약물을 개발한다면 입덧 예방·치료제로도 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